D.Inc.

주식회사 D 전시를 시작하며…

군사정권의 죄악이 세상에 드러나고, 한 세대가 종식을 고하는 듯 했던 80~90년대. 민주가 나를 부르고, 내가 민주를 목 놓아 불렀다던 그 때. 전쟁의 공포를 이용한 장사가 끝나자 새로운 상품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후, 무고하게 고문받고, 투옥되고, 살해됐던 우리들의 영웅들이 하나 둘씩 귀환해 온 10여년 동안, 강남에 땅 한평 사지 않고, 전환의 시기에 약삭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나의 아버지는 욕망이 거세된 무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욕망의 정치로 상점은 리뉴얼됐고, 새로운 공포 팔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돈을 버시오. 개인의 영달과 가정의 화목과 국가의 번영이 당신 손에 달려 있소. 돈을 쓰시오. 너 자신의 성취와 가정의 품위와 국가의 위상이 당신 손에 달려 있소. 돈을 버시오. 돈을 쓰시오. 없으면 돈을 그냥 받으시오. 그리고 또 돈을 쓰시오. 쓰시오. 쓰시오. 자 돈을 갚으시오.

돈이 바꿔놓은 우리의 정신세계는 풍요로움으로 포장되어 다시 공포로 다가와 있다는 것을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돈, 그 자체는 허상이며 편의상의 물건이며, 기호로서 존재하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이의 욕망이며 괴물인 것이다. 오늘도 쉬지 않고 돈으로 유혹하는 수화기 말단의 전사들은 친절함을 위장한 채, 돈이 없는 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웍밴드 공(workband GONG)의 여름 기획전 ‘2015 공포:주식회사D (D, INC.)’는 ‘2014 공포:이마고(IMAGO)’전을 마치면서 바로 기획이 시작됐다. ‘공포전’은 공포를 즐기는 전시이면서 동시에 그 공포의 실체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전체를 일관하는 기획의도라 할 수 있다. 준비하는 1년 사이에도 공포장사꾼들의 전횡은 점점 그 한계치를 높여 갔고, 길을 나서면 끝도 없는 신상품의 마천루와 먹고 즐기는 온갖 팁들의 향연이 이정표의 혼란을 가져왔었다. 하지만, 공포를 즐기며 그 실체를 알아가자는 최초 기획의도에 집중하면서 그 혼란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는 ‘공포’ 그리고 ‘자본’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보다 가볍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100년 후 세계인 ‘초자본주의, 2115년, 구서울’ 이란 가상의 시대를 상정하고 있다. 2115년,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하고 신분, 권력, 생명을 넘어 스스로 신이 되어버린 ‘돈'(자본)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모인 몇몇 예술가들이 ‘주식회사 D’를 설립하는 것으로 전시가 시작된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괴물, ‘돈’의 허상을 걷어내기 위해 그들은 그들만의 도구(회화,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를 무기로 삼는다.

2015 공포:주식회사D는 세상에 저항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정체를 알게 되면 실체 없이 사라지는 공포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공포가 사라지면, 이처럼 백주대낮에 살인예고 전화를 해대며, 돈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세상이 언젠가는 끝나지 않을까. 천문학적인 숫자의 뒷돈으로 공포 장사를 하는 욕망의 정치가 종식을 고하지 않을까. 2015년 루저의 자식은 또 다시 민주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돈의 민주.

“난 삐걱거리는 문 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 본적이 없습니다. 컴컴한 거리.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는 밝은 대낮,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殺人이 더 흥미롭습니다.” – 알프레드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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