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 열린 놀이

“개방평면 개방경기”는 인디아트홀 공의 레지던스 ‘스튜디오 긱(GIG)’의 입주 작가 7명과 같은 건물에 위치한 ‘팩토리 218’ 작가 6명, 그리고 ‘공연창작단 짓다’가 최소한의 경계와 최소한의 규칙을 지켜가며 공간을 찾는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 간 공연, 전시, 오픈 스튜디오, 아티스트 토크가 융합된 프로그램이다.

개방평면(Open Plan)은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이 사용한 개념으로, 공간의 다용도 사용을 위해 벽이나 칸막이를 최소로 줄인 건축 평면을 뜻하며, 개방경기(Open Play)는 경기의 참여자들이 규칙을 정해가며 진행되는 경기를 의미한다. 인디아트홀 공은 경계 없이 활짝 열린 작가들의 작업실에 더해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열린 공간에서 열린 놀이로서 <개방평면 개방경기>는 작가들의 개입, 작업으로서의 개입, 관객들의 개입이 뒤섞이고 재편성된 공간을 통해 경계를 무한히 넓혀가는 문화예술 공동체를 상상하게 한다.

경계가 없는 것은 이상적인 상황인가? 경계를 넘어서서 사유가 가능한가? 벽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고려한다면, 가두고, 금지하고, 차별하는 벽이 없는 것은 이상적인 상황일 수 있으나 현실에서 벽이 없는 상황이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번 <개방평면 개방경기> 프로젝트에서 작가들은 벽이 없는 상황. 경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라는 벽과 마주했다.

문명의 발전과 인터넷 사용의 확장은 국가, 거주지의 물리적 경계를 무너뜨린 지 오래다. 반면 개인의 벽은 언어, 취향, 외모, 문화, 가치관 등으로 더욱 견고해졌다. 이런 현상은 개인을 고립시켜 타자와의 소통을 거부하는 상황을 만들고 사회 대립구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유아적 개인주의나 고립주의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 연대와 타협을 어렵게 한다.

‘나’라는 벽을 넘어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의 연대가 시작된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의 경험과 동시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 중 하나는 나와 타자와의 경계가 뚜렷해지면서 ‘사회 안전망’이라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개개인의 색깔이 섞이지 못하고 고립된 형태로 남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우울한 사회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로 변화하는 요즘, 합리적 개인주의와 유아적 이기주의는 구분해야 한다. 개개인의 고유한 색은 서로가 존중하되 때로는 각자의 색이 섞여 제3의 색을 만들기도 하고 다양한 색깔이 섞여 또 다른 그림을 만드는 일 즉, 소통과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 인디아트홀 공은 다양한 색깔의 작가들이 모여 함께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가는 장소다. 때로는 실패하고 망치기도 하지만 조화로운 그림을 만들기 위한 실험과 도전이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인디아트홀 공은 열린 공간을 통해 연결되는 예술 공동체를 지향한다. 편의를 위한 최소의 칸막이만 있는 작업실에서 작가들은 서로 허물없이 작업과 아이디어를 나눈다. 하지만 결코 그 공동체는 작가들과 관객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디아트홀 공은 동시대의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공동체를 꿈꾼다.

이번 2020 영등포 네트워크 예술제는 인디아트홀 공이 지향하는 개인의 존중과 연대 그리고, 소통과 교류를 함께 나누고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한 실험의 장이 되었다. 또한 이번 예술제는 개인에서 공동체, 공동체에서 지역사회로 확장해 나가려는 의지와 열린 구조로서의 진행방식으로 기존 예술계의 권위를 답습하지 않고 넘어서려는 시도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개방평면 개방경기’의 모습은 인디아트홀 공 프로그램뿐 아니라 예술제 전체에서도 볼 수 있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의 관계는 다방면으로 열린 구조여야 한다.